고양이 파닥파닥 하늘을 날다.

by 파닥파닥날라
[개말] 연습
 

SS501 GaeMal , 사랑을 하면.


아무래도 금방 그칠 모양은 아닌 듯 했다. 강의실을 나올 때 한 두 방울 떨어지던 것이 이제는 제법 빗줄기를 굵게 하여 쏟아져 내린다. 일정한 박자로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가 묘한 울림이 되어 소주 몇 잔에 달아오른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. 분명 바닥에 발을 딛고 있는 것이 맞는데 몸은 이상하게 붕- 하고 떠오르는 것 같다. 어렸을 때 탔던 퐁퐁-에서 막 내려온 것처럼 바닥에 닿아있는 발이 내 발이 아닌 것 같이 무겁고 나른한 기분. 묵직한 중력감이 신경을 느슨하게 해 발끝까지 나른함이 퍼진다.


“ 기분 되게 이상하네. 이슬이 이렇게 쓴데 공주는 어떻게 이슬만 먹고 살 수 있을까. ”


혼자 중얼거리는 걸 들었는지 곱창을 뒤적거리던 김현중이 픽-하는 김빠진 웃음소리를 냈다. 실없는 소리를 뱉어내니 그제서야 한참동안 쳐 박았던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춰온다. 그리곤 금새 빈 잔에 다시 술을 따른다. 먹기 싫은데 하고 말해봤자 반쯤 술에 취한 혀는 고작 웅얼거림만 뱉어내며 입안을 맴돌 뿐이었다. 뭐 김현중이라면 들어도 못들은 척. 뻔하지. 다시금 쪼로록 하고 맑은 소리를 내며 따라진 소주잔을 내려다 봤다. 투명한 술잔위로 붉게 닳아 오른 얼굴이 보였다. 흐릿하게 일렁이는 파장이 내 마음 같아 속이 울렁거려왔다. 여전히 투명한 잔이지만 이상하게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. 속까지 까만 내 마음처럼.


다 타서 눌러 붙어버린 곱창이 김현중 같았다. 말라 비틀어진 양념 사이로 검게 눌러 붙은 것이 정말로 피골이 상접한 김현중 얼굴처럼 보여 삼켜뒀던 화가 갑자기 또 치밀어 오른다. 질근질근 씹어 재껴도 성에 안찬다. 분명 잠도 제대로 못 잤을 것이다. 턱 아래까지 내려앉은 다크써클이 현중을 더 파리하게 만들었다. 말이 좋아 파리지 속엣 말을 다 하자면 남루하다 못해 비루해 보일 지경이었다. 그런데도 정신 못 차리고 헛소리를 한다.


“ 평생? 그건 또 무슨 쌍팔년 개그냐? 니가 그 새끼를 몰라? 아님 내가 몰라? 평생? 결국 니놈 파라다이스도 그 새끼 가랑이 사이밖에 안됐어 마. 미친놈. 그냥 뒈져버려. ”


잔뜩 늘어져서는 같잖은 소리를 뱉어내는 김현중이 못마땅해 또 모진 소리를 뱉어내고 말았다. 빌어먹을 놈. 죽일 놈. 씹어 먹고 갈아먹어도 시원찮을 놈. 참으려 했는데, 누렇게 뜬 얼굴을 보니 욕질이 절로 튀어나온다. 가시 박힌 내말에는 아랑곳없이 낼름 소주잔을 털어낸다. 술이 물이고 물이 술인 것 마냥 잘도 마신다 김현중은. 한 잔을 마시기가 무섭게 빗소리를 안주삼아 또 한 잔 털어 넣는다. 바닥에 내려앉는 빗방울처럼 무겁게 가라앉은 눈이, 마주앉아 있는 내가 아닌 다른 곳을 쳐다본다. 현중의 슬픔까지 더해져 비는 지독히도 무겁게 쏟아졌다. 참으려 했지만 마음이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.


까맣게 타들어가는 내 속을 모르는 김현중은 술을 마시다 말고는, 다 낡아 빛이 바랜 벽지 틈새로 빗물이 조금씩 비집고 세어 나오는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다시 낮은 한숨을 뱉어냈다. 군데군데 앉은 얼룩에 보이지도 않는 희미한 벽지 무늬가 뒤적거리던 곱창이라도 되는 마냥 술 한 잔에 천장 한 번, 그리고 한숨 한 모금까지. 박자도 엇나가지 않는다.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잔 부딪히는 소리라도 없었으면, 쏟아지는 빗물이 아니라 김현중의 못다 삼켜 뱉어낸 한숨 소리에 빠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. 내가 김현중의 한숨을 전부 다 모아 꾸역꾸역 삼켜버린다는 걸 그는 아마 모를 것이다. 빨간색 시트지로 크게 쓰여 진 곱창간판을 따라 동그랗게 파인 바닥에 고이는 저 빗물보다 더 지독한 그의 한숨이 적금처럼 꼬박꼬박 내 가슴 안에 쌓여가고 있었다. 쌓여진 한숨보다 더 커져버린 사랑은 이자쯤 되나 보다. 손해만 보는 마이너스 이자.


“ 차라리 곪아서 다 썩어버렸음 좋겠다. 할 수만 있다면 니 심장이라도 파내주고 싶다고. 돌아선 건 그 새낀데 왜 니가 더 미안해하는지 모르겠어. 자꾸 모진 소리 한다고 나 타박 하지마. 나는 처음부터 그 새끼 싫었고 지금도 싫고 앞으로도 그 새끼를 평생 저주하고 다닐거니까. ”


그러니까 그렇게 죽으려고 작정한 놈처럼 굴지 말란 말이다. 목까지 차오르는 이 말을 꾸역꾸역 삼키며 눈물 같은 술을 들이켰다. 내 사랑만큼 쓰고 달다. 혼자 하는 사랑은 바라보기만 할 때는 달달한데 막상 뒤돌아서면 너무 쓰다. 눈물 한 잔에 술 한 잔. 김현중을 안주삼아 또 한 잔.


낙원을 잃어버린 현중과 채 닿기도 전에 포기해야만 하는 나. 상처의 깊이와는 상관없이 어느 쪽이든 상실에 대한 아픔은 심장에 깊게 각인 될 것이다. 포기라는 것이 마음먹은 것처럼, 무 자르듯 잘라지는 것이라면 그도 나도 이렇게 상처투성인 빌어먹을 심장을 끌어안고 있지는 않았을 텐데. 포기해야 하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지만, 외사랑의 뻔한 결말 따위야 너무도 잘 알고 있는데 도통 그 포기란 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. 그를 등지고 서야 한다는 사실이 자꾸 나를 벼랑 끝으로 밀어내는 것 같다. 아마 김현중도 이럴테지. 헤집혀 너덜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그렇게 꾸역꾸역 곪은 상처를 손으로 막고 있을테지. 조각난 내 마음처럼, 투명한 소주잔 위로 엷은 파장이 일었다. 고개를 깊게 숙였으니 아마도 김현중은 이 눈물을 모를 것이다.



...... <중략> ......



바닥이 보이지 않는 까만 속은 김현중에게도 있었다. 저 까만 눈에 가득 차 있는 지금 빈자리의 주인을 생각하자 다시금 입안이 씁쓸해져왔다. 말간 눈을 가진 그의 연인. 그리고 김현중. 흐릿해져가는 시선 끝에 매달린 김현중은 낡아서 흔적도 없는 벽지무늬보다 더 희미해 부연 먼지같이 아련하기만 하다. 김현중. 김현중. 허영생과 김현중. 그리고 나. 곱창을 씹는 것처럼 몇 번을 곱씹어 봐도 나는 김현중을 삼킬 수가 없다.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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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08.5.10. 미완저장. 연습
by 파닥파닥날라 | 2008/05/10 15:58 | . 연습 | 트랙백 | 덧글(0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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